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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보고서/지역 방송 평가단

정운천의 ‘함거 석고대죄’를 보는 두 개의 시선 [미디어스 기고-김환표]

by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2011. 5. 29.
정운천의 ‘함거 석고대죄’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지역언론 바로 틀기]지역언론의 성찰과 자성은 왜 없는가?
2011년 05월 25일 (수) 13:56:13 김환표 / 전북민언련 사무국장 mediaus@mediaus.co.kr
“LH 분산배치 무산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건 도민들이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네 탓'에만 매달린다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이른바 면피용 강공책이란 비판을 들을 것이다. 내년 선거를 겨냥한 액션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도민들을 기만하는 것이 된다. 강경기조에 함몰된 나머지 도지사 직(職)이나 국회의원 직 하나 던진 사람도 없으면서 남의 돈으로 도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도 볼썽사납다. 이젠 내부 역량에 반성할 점은 없는지 성찰해야 할 때다. 이른바 '내 탓'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전북일보 5월 19일자 사설 <LH 무산, 언제까지 정부 탓만 할 텐가>)

“최근 한 달 넘게 도정은 LH 분산 배치와 철회 투쟁밖에 없다. 말하자면 최악의 경우 이것도 저것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만에 하나 LH 유치 무산의 실책을 호도하기 위해 강경 일변도의 투쟁을 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LH 유치 무산 이후 일주일 다 돼가지만 도와 민주당은 무산원인과 책임론에 대해 겸허하고 진지하게 밝힌 적이 없다. 오로지 정부 잘못이고 도와 민주당은 잘못이 아예 없다는 태도다. 적어도 도와 민주당은 LH무산이라는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새전북신문 5월 23일자 사설 <자유로운 토론 보장하고 실익있는 싸움해야>)

LH유치가 실패하면서 전북지역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지역신문은 이른바 전라북도 집행부와 지역 정치권의 책임론을 지적하고 나섰다. 전북일보와 새전북신문은 LH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전라북도와 지역정치권의 전략과 전술 부재를 거론하면서 내부 자성과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 정운천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연합뉴스  
흥미로운 것은 반성과 성찰이 화두가 되면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LH유치 실패와 이에 따른 전라북도 집행부·지역 정치권의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정운천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의 이른바 ‘함거 석고대죄’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로 나와 ‘LH 전북 일괄유치’ 공약을 내걸었던 그는 5월 19일부터 LH경남일괄이전과 관련 전북도민들에게 사죄한다는 의미로 함거에 들어가 석고대죄를 진행하고 있다.

정운천 전 최고위원의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전북지역의 시선은 두 개로 엇갈린다.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시선과 진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함거 석고대죄를 보는 상이한 시선은 지역신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내부 책임론 지적에 다소 소극적인 전라일보와 전북도민일보는 함거 석고대죄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반면에 자성과 성찰을 촉구하고 있는 전북일보와 새전북신문은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전북일보 논설위원 이경재는 5월 24일자 오목대 칼럼 <신선한 ‘내 탓’>에서 “네 탓만 하는 세상에 내 탓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나선 그가 신선하게 느껴진다.”며 “‘쇼!’라고 폄훼하는 정치인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는 그에게 묻는다. ‘함거 속의 죄인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단 한번이라도 그런 모습 보여 주었느냐’고”고 정운천 전 최고위원의 석고대죄를 우호적 시각으로 평하고 있다.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정운천 전 최고위원의 이른바 석고대죄가 ‘정치적 쇼’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회피하지 않고 책임질 부분에 대해선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꼭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유불급이라지만 성찰과 반성만은 차고 넘쳐도 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운천 전 최고위원의 ‘함거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지역신문의 시선과 관점에 빠진 게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성찰과 자성을 촉구하는 전북일보와 새전북신문, 내부 책임론 지적에 소극적인 전북도민일보와 전라일보 모두에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무엇인가? 정운천 전 최고위원의 과거 행적에 대한 평가다. 이는 함거 석고대죄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잣대이기 때문에 사소하게 볼 수 없는 문제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정운천 전 최고위원은 LH공사의 전북유치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그는 일괄유치의 근거로 “대한민국은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의 나라다.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하며, 30년 지역장벽을 깨는 계기라는 점에서 대통령과 사전 교감을 가졌다. 분명히 약속한다”며 LH 일괄유치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른바 이명박 대통령과의 LH일괄유치 사전교감설이었다. 이 발언은 지역 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딱히 그 때문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그는 민주당의 아성이라 할 전북에서 18.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그는 한나라당 후보로 역대 최고 득표율이라는 전리품을 얻었다.

이후 정운천 전 최고위원은 어떠한 역할을 해 왔던가? 그가 LH유치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벌여 왔는지 그 누구도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오히려 낙선 이후에는 당선자도 지키기 어려운 게 공약이라며 돌변했다. 예컨대 지난 3월 전주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김완주 지사가 LH 문제를 건의하자, 이에 동조하기는커녕 불편한 심기까지 드러낸 바 있다.  물론 공약은 ‘공적 약속’으로 당선자에게만 유효할 뿐, 사실 낙선자는 이행 의무가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대통령과의 사전교감설까지 제시하며 LH일괄유치를 약속했던 그였기에 지역신문이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게 마땅할 것이다.  

지역신문에게 빠진 것은 또 있다. 내부 책임론 지적에 소홀한 전북도민일보와 전라일보는 말할 것도 없고 성찰과 자성을 촉구하는 전북일보와 새전북신문에서조차 정작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자아성찰은 발견할 수 없다.

 
 
▲ 전북도민일보 2010년 12월 13일자 1면


2010년 12월 12일 전주시청 앞에선 이른바 ‘LH유치를 위한 범도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당시 지역신문은 백면에 궐기대회 화보까지 게재할 만큼 여론몰이에 적극적으로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의 LH유치 전략과 전술에 대한 점검과 대안 제시엔 인색했다. 2011년 4월 6일 김완주 도지사가 LH본사 분산 배치를 요구하면서 삭발하고 김호서 전라북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도의원 15명이 LH 분산배치를 촉구하며 전주에서 서울까지 300km에 이르는 마라톤 대장정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지역신문은 LH본사 유치에 다걸기하고 있는 전북도와 전북도의회,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행보 전달에만 집중했었다.

타자의 티끌 못지않게 자신의 눈에 든 들보까지 보겠다는 자세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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