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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헌재의 언론악법 무효 청구 기각 관련 30일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논평

by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2011. 5. 26.

이제 ‘헌재 개혁’도 논하자

‘사익추구집단’ 조중동, 헌재 판결 ‘힘 실어주기’ 낯 뜨겁다




언론악법 무효 청구를 기각한 헌재의 판결에 국민의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 ‘반칙은 했지만 골은 인정한다’, ‘도둑질은 위법이나 훔친 물건은 도둑의 소유다’ 등등 헌재 판결을 빗댄 누리꾼들의 패러디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헌재는 지난 2004년에도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된 바 있다. 행정수도특별법을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판결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기상천외한 판결로 신뢰에 큰 손상을 입은 헌재는 이번에 또 다시 ‘절차는 위법하나 법안은 유효하다’며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정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

30일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헌재의 판결을 사설로 다뤘으나, 헌재의 정치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한 신문은 경향신문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조중동은 헌재의 비상식적인 판결을 지적하기는커녕 야당을 탓하며 ‘이제 미디어산업 발전에 힘을 모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 판결의 ‘최대수혜자’로서 자신들에게 방송뉴스 진출의 길을 터준 데 대해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조선>, 야당 비난하며 “TV채널 많아지는 데 반대한 것”으로 왜곡

조선일보는 사설 <헌법재판소 신문·방송법 가결 유효 결정>에서 헌재 판결에 대해 어떤 지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헌재의 판결 내용을 요약해서 전했을 뿐이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헌재가 두 법의 표결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했으나 민주당이 국회에서 정상적인 법안 심의절차를 따랐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까닭이 없었다”며 야당에 책임을 물었다. 헌재의 정치판결과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졸속 추진은 모두 은폐한 채 언론악법을 둘러싼 갈등을 야당 탓으로 돌린 것이다.

나아가 사설은 야당의 언론악법 반대를 “TV채널이 많이 생기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왜곡했다. 민주당이 현재 지상파3사 체제를 유리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언론악법에 반대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나마 통과된 신문·방송법도 민주당과 기득권 TV들의 반발로 지상파 독과점은 그대로 유지시켜 주고 있다”는 불평까지 덧붙였다.

참으로 교활한 행태다. 누가 TV채널이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단 말인가? 이번 방송악법의 핵심은 이미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중동 수구족벌신문들이 방송뉴스까지 진출하도록 허용한 데 있다. 기존 방송법도 조중동의 방송진출 자체를 막지 않았다. 다만 여론다양성의 측면에서 ‘뉴스’가 포함된 채널에만 진출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중동이 ‘뉴스’ 채널에 진출해야만 미디어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야당이 TV채널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미디어산업 발전을 가로막은 것처럼 사태를 호도했다.



<중앙> “헌재 결정, 미디어산업 육성에 힘 합치라는 메시지”

중앙일보는 <소모적 논쟁 접고 미디어산업 육성에 힘 모으자>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제목만 봐도 중앙일보가 어떤 주장을 폈을지 드러난다.

사설은 헌재 판결의 내용을 짧게 전한 뒤 두 가지를 ‘지적’했으나 그 내용을 보면 결국 헌재 판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사설은 “그동안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여론 분열과 국론 손실을 감안하면 헌재의 결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며 억지 ‘유감’을 나타냈다. 이어 “권한침해와 법안 가결 선포에 대해 다소 상충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새로운 다툼의 불씨를 남긴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야당이 헌재의 ‘권한침해 인정’을 근거로 언론법 재논의를 주장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헌재 결정을 계기로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미디어산업 육성에 국민 총력을 모아야 한다”, “또다시 국론 분열을 야기해 미디어산업이 세계 흐름에 맞춰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정부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법 시행에 필요한 후속 조치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이제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미디어 산업 육성을 위해 모두 힘을 합칠 때라는 것이 이번 헌재 결정의 메시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헌재의 판결을 비판하고 언론악법에 따르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일을 “소모적 논쟁”, “국론분열”로 몰아붙이는 행태다.



<동아> “헌재, ‘국회 표결은 국회에 맡긴다’는 원칙 확인”

동아일보 역시 조선·중앙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디어법의 ‘국민 위한 효과’ 극대화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헌재 결정을 짧게 전하고, 절차적 문제를 발생시킨 책임을 야당에게 돌렸으며, 미디어산업 발전에 힘을 모으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늘 그렇듯 조선·중앙일보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헌재 판결을 추켜세웠다.

사설은 “헌재가 ‘국회 안에서 다수결로 이뤄진 표결에 대해서는 국회에 맡긴다’는 원칙을 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불복해 계속 발목을 잡는 행태는 여야를 떠나 자제해야 옳다”는 주장을 폈다. 2003년 압도적인 찬성(재적의원 194, 찬성 167)으로 국회를 통과한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2004년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근거를 들고 나와 위헌판결 내렸을 때는 왜 이런 주장을 펴지 않은 것인지 실소가 나온다.



한편, 경향신문은 <헌재의 ‘미디어법 결정’, 기만 아닌가>라는 사설을 통해 “표결과정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법적 효력엔 문제가 없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헌재를 비판했다. 또 헌재가 미디어법 통과를 정당화했다는 비난 뿐 아니라 “앞으로도 집권당의 직권상정과 강행처리를 용인할 것이라는 선례”를 남겼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보루가 돼야 할 헌재 본연의 모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은 <헌재, ‘날치기는 위법이니 국회가 바로잡으라’>는 사설을 싣고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헌재 판결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무효 여부를 자신이 확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 이들 법이 유효라거나 무효라는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며 헌재의 뜻이 이렇다면  국회가 “개정안을 내는 등의 방법으로 정상적인 재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주문했다.



두 가지 과제, ‘조중동 방송’ 대응과 ‘헌재 개혁’

헌재가 ‘절차는 위법이나 법안은 유효하다’는 정치 판결을 내린 시점에서 우리사회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게 됐다.

첫째는 ‘헌재 판결로 정당성을 얻었다’며 정부가 언론악법을 추진하는 데 대한 대응이다. 물론 국회에서 ‘언론법 재논의’가 이뤄진다면 좋겠으나 이는 현실 정치의 역관계와 이명박 정권·한나라당의 본질을 고려할 때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가 초래하는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다시 ‘국민의 힘’밖에 없다.

이미 누리꾼들은 ‘조중동 방송’ 컨소시움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불매운동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민주노총도 ‘조중동 OUT’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과 수구기득권세력이 국민의 거센 반대를 뚫고 ‘조중동 방송’을 밀어붙인다면 시민사회는 ‘조중동 방송’에 맞선 대중 운동을 벌일 것이다.

  
아울러 존재 이유를 부정한 ‘헌재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2004년 헌재가 ‘관습헌법’을 들이대 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 판결했을 때에도 ‘헌재 개혁’, ‘헌재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 등이 제기되었으나 우리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헌법재판소’의 존재를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헌재는 위헌법률심판권, 탄핵심판권, 위헌정당해산심판권, 권한쟁의심판권, 헌법소원심판권 등 막강한 심판권한을 갖고 있으나 헌재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사실상 없다. 2008년 참여연대는 헌재 20년을 맞아 헌재재판관과 헌법연구관의 구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으로 성장한 헌재가 “50-60대의 법률가(변호사자격자)들이 30-40대의 법률가(변호사자격자) 및 소수의 헌법연구 인력들의 도움을 받아 헌법해석의 최종적인 확정권한을 행사해왔다”고 분석하면서 “헌법재판소의 민주화를 위해 기탄없는 논의를 시작할 것”, “헌법개정논의에서 헌법재판소의 독립과 민주화를 핵심적인 의제 중에 하나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시민사회와 학계가 이 같은 제안을 적극 받아들일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본다. 나아가 언론계도 언론악법에 대한 대응과 함께 한국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헌재 민주화’ 논의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끝으로 헌재 판결에 ‘고무’된 조중동에 경고한다.

조중동의 오늘 사설은 조중동의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언론악법의 ‘이해관계자’이자 ‘최대수혜자’인 조중동이 “미디어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운운하며 헌재 판결에 힘을 실어주는 꼴은 참으로 낯 뜨겁다. 자신들의 사익(私益)을 ‘다수의 이익’, ‘공적 이익’으로 포장하는 일은 조중동이 ‘언론’이 아니라 ‘사익추구집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줄 뿐이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수구기득권집단들이 밀어붙이는 ‘조중동 방송’은 반드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는 국민들과 함께 ‘조중동 방송’에 맞서 싸울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끝>


2009년 10월 3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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