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김재원(55) 전북지방경찰청장이 ‘구두경고’를 받은 것에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기자단 내부에서도 “말도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전북청장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여자가 고추를 안 좋아하면 안되죠”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 전북청장은 지난달 13일 출입기자단 초청만찬에서 한 언론사 여성 기자에게 “고추를 먹을 줄 아느냐”고 묻고 해당 기자가 “잘 못 먹는다”고 답하자 “여자가 고추를 안 좋아하면 안되죠”라고 말했다. 또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전북청장은 해당 기자가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고추를 싼 쌈을 입에 넣어주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경찰청 기자단 소속 기자들에 따르면 기자들은 해당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자리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취기가 오르면서 김 전북청장의 발언 수위가 높아졌고 기자들 사이에서 ‘빨리 마무리짓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와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후 주말이 지나고 기자들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회의를 열어 ‘기사화를 하되 각 회사의 방침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한 또 다른 기자는 “기자들이 느낀 문제의식은 분명했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조치가 기사화였다. 가장 데미지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 대다수 언론사가 해당 사건을 보도했다. 

 

 

 

 
▲ 김재원 전북경찰청장. 사진=전북경찰청
 

그러나 김 전북청장이 받은 징계는 구두경고에 그쳐 논란이 일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발언을 들으신 분이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지는 아니했다’고 진술한 점도 참고한 감찰조사를 통해 김 전북청장의 발언이 성희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그럼에도 대단히 부적절하기에 경고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지난 2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8월 7일 경찰 성범죄에 대해 자체 감찰 단계에서 즉각 파면, 해임하고 수사 의뢰를 의무화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시행을 선언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언론사 기자를 성희롱하고 기자들의 수치심을 유발한 김재원 전북경찰청장에게 결국 면죄부가 수여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이번 성희롱 언행은 민간 기업에서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만한 사안”이라며 “수사 기관의 장이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성희롱한 일을 구두 경고로 넘어간다면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공권력을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구두경고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단 일부에서도 구두경고는 지나치게 가볍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자단 소속 한 기자는 “당시 김 전북청장의 행동은 분명히 부적절했기 때문에 구두경고라는 징계수위는 말도 안된다”며 “직위해제는 아니더라도 책임을 지는 징계 수위가 나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도 “사실 구두경고는 너무 약하다. 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한 기자는 이에 대해 “솔직한 말로 해당 사건으로 김 전북청장이 직위해제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언론도 더 세게 보도했을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 강하게 보도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어 “또 당사자인 기자가 더 이상 사건에 중심에 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런 핑계를 기자들 스스로 대고 있다”고 말했다. 

손주화 전북민언련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기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지역사회가 좁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계속 얼굴 보고 지내야 하는데 기사로 강하게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두경고라는 징계 수위는 면죄부나 다름 없을 정도로 낮은 징계이기 때문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김 전북청장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곧장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으며 지난달 16일에는 기자실을 찾아 공식적으로도 사과를 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기자단 내부에서 김 전북청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의견도 많다. 거듭 사과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