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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미디어이슈 브리핑

재난 상황과 지역 방송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by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2020. 7. 9.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재난 상황이 언제쯤 종식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은 더 큰 걱정거리다. 코로나19는 비단 전염병 관리에 대한 고민만을 남겨 놓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지구환경의 변화는 재난의 일상화를 초래했다. 재난을 끼고 살든, 아니면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든 인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것인지도 모른다.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크게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된다. 재난방송이라 함은 재난 발생 시(또는 재난 발생이 예견될 시) 국민들에게 재난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전해줘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또는 재난 발생을 예방), 더 나아가 재난의 복구 및 사고의 원인에 따른 앞으로의 대책에 대한 방향까지 제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재난방송 등)는 재난 상황에서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제공 및 그 과정에서 피해자 및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난방송은 “사실성, 접근성, 흥미성 등과 같은 기존의 저널리즘 기준과 달리 전문성, 정확성, 그리고 계몽성과 예방성이 전제”(장원일, 2005)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단순한 재난 전달 시스템이 아니라 신속성과 함께 피해자 중심, 인권보호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재난방송은 단순한 상황 전달에 그치거나, 지나친 속보 경쟁, 형식적 대응, 늦장 대응, 선정적 보도, 확대 보도로 인한 불안감 조성, 피해자의 인권침해, 예방적 차원의 보도 미실시, 피해자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정보 제공 부족 등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지역 밀착적 정보 제공자로서 지역 언론의 역할

더 큰 문제는 실제 재난 상황에서 재난방송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주 지진이다. 많은 시민들이 지진 발생 후 재난방송이 늦어진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나마 뒤늦게 이뤄진 지진 보도는 내용이 부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가 가장 불만스러웠던 것은, 지진은 폭우나 다른 재난과 달리 갑자기 왔다가 사라집니다. 또한 재발 위험도 있고요. 그럼 국가재난방송사였다면 드라마 끊고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을 틀어줬어야 합니다. 1차는 넘어갈 수 있습니다. 몰랐으니까요. 그럼 2차 지진이 있기 전에 재난방송으로 전환하거나 늦어도 2차 지진 후에도 전환했어야 하는데 이게 없었어요. 라디오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지진 중계방송만 하고 있는 정부 당국이나 방송국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처 요령이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행동 요령을 알려주지 않고 국민 불안만 조장하는 방송 짜증 난다.”

 

재난방송 시스템 미비가 일차적 원인이지만, 서울 및 수도권 위주의 방송 체제가 경주와 같은 지방의 사건을 간과한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지방에서 난 사건 사고라 그래요. 서울엔 비 조금 와도 난리인데 지방 큰 사건 사고는 그냥 단신입니다. 항상 그래왔어요. KBS도 까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모든 게 서울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이는 재난의 지역 밀착성과 관련된다. 실제로 코로나19는 정부 차원의 방역 대응 못지않게 지역별 방역 대응의 중요성을 확인시켰다. 신천지 시설 등에 대한 경기도와 대구시의 엇갈린 대응이 관심을 받기도 했고, 일부 지자체의 선제적 대응 사례가 국민적 찬사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현실 지역 방송 시스템에서 재난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인력 및 장비, 재원 등의 한계로 인해 매뉴얼이 있다 하여도 근무시간 외에 발생하는 재난 상황에 긴급하게 대처할 수 없다. 불평등한 네트워크 규약도 문제다.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끊고 긴급 방송을 편성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저널리즘 차원의 검토다. 신속성에 치우쳐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 사례가 반복되거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보도의 선정성 및 정보의 적절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 발표를 단순 중계하는 데만 치중하는 점도 문제다. 대응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 및 대안 제시는 빈약하다.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역 언론 역시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수익 구조 악화가 지역 방송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안 차원에서 유튜브 플랫폼 등 지역 차원의 실험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이고 즉흥적인 움직임에 그친다는 평가도 많다. 그동안 논의되어 왔던 지역 방송 정상화 방안이 여전히 유효한지도 검토의 대상이다. 재난 상황은 지역 방송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 이 글은 2020년 <말하라> 여름호 '미디어이슈 브리핑'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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