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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보고서/지역 방송 평가단

<이상현의 영화속 미디어 이야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기자의 정형화된 모습 ‘다이하드’

by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2011. 5. 29.

[영화 속 미디어 이야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기자의 정형화된 모습 ‘다이하드’




빡빡 밀은 대머리의 중년 아저씨, 독설은 여전하지만 말 수는 현저히 줄어든 존 맥클레인 형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재밌지만 안타까운 경험이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맨발로 테러리스트 때려잡는’ 영웅도 별 수 없구나 하는 미묘한 감정이랄까. 어쨌든 개인적으로 올 여름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재밌게 본 영화가 ‘다이하드 4.0’이었다. 모처럼 온몸으로 ‘죽도록 고생하는’ 나이 든 맥클레인의 액션을 보는 것도 좋았고,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는 사이버 테러라는 소재도 꽤 흥미로웠다.

‘다이하드 4.0’도 좋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다이하드’ 시리즈 최고의 작품은 1편이다. 빌딩이라는 한정적이고 밀폐된 공간에서 테러리스트와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은 이후 ‘언더시즈’, ‘스피드’, ‘에어포스 원’, ‘더 록(The Rock)’ 등등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을 정도다.

이쯤에서 문제 하나. ‘다이하드’에서 주인공 맥클레인을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테러리스트 대장인 한스 그루버나, 덜 떨어진 FBI 요원 등 후보는 많지만 의외로 주인공은 리차드 쏜버그라는 방송 기자다.

이 쏜버그라는 기자는 꽤 흥미로운 캐릭터다. 중계차량을 확보하기 위해 생방송 뉴스가 진행 중인 스튜디오로 뛰어들 정도로 저돌적이다.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형사가 테러리스트와 단독으로 상대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가족들을 취재하기 위해 무작정 맥클레인의 LA집에 쳐들어가서는 불법 체류 중인 히스패닉계 가정부를 이민국에 넘기겠다고 협박해서 취재에 성공하는 식이다. 그 덕택에 맥클레인의 아내 홀리 맥클레인이 한스 그루버의 인질이 되고, 맥클레인 또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특종과 개인의 명예를 위해 인권이고 프라이버시고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쏜버그 같은 기자들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정형화된 캐릭터 가운데 하나다. 이런 캐릭터들은 ‘선정성’으로 먹고 사는 영․미권 언론의 모습이 투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쏜버그의 모습이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연예인 같은 유명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그 일과 아무 상관없는 가족들에게도 무지막지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집 문 앞에 서서 그 가족이라도 당연히 취재에 응해야 한다는 듯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편집해서 내보내는 뻔뻔함.
이런 언론에 대한 묘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다이하드’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쏜버그가 맥클레인의 부인에게 한 방 먹는 바로 그 장면이니 말이다.

‘다이하드’에서 한 기자의 철없는 행동 하나가 주인공과 인질들을 최악의 상황에 몰아넣었듯 언론의 잘못된 보도는 한 개인, 나아가서는 한 국가를 위기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다. 언론의 책임과 윤리 의식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한 편의 오락영화 ‘다이하드’를 보며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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