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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보고서/지역 방송 평가단

<이상현의 영화속 미디어 이야기> 미디어가 곧 힘!! ‘007 네버다이’

by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2011. 5. 29.

<이상현의 영화속 미디어 이야기> 미디어가 곧 힘!! ‘007 네버다이’

“본드, 제임스 본드.”

꼭 제 이름을 두 번씩 반복해서 말 하는 느끼한 친구. ‘마티니를 젓지 않고 흔들어’ 마시며, 007이라는 살인면허(License to kill) 번호를 가지고 있는 바람둥이 스파이. 벌써 22편이 제작되고 있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는 우리에게 친구만큼이나 익숙한 인물이다. 20편이 넘는 시리즈가 제작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 스파이 캐릭터를 분석해 왔다.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제임스 본드는 남성성과 자본주의의 ‘로망’이다. 그가 가진 총과 최신 자동차, 각종 신무기, 그가 입는 화려한 명품 슈트 그리고 본드걸, 이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남성들의 무의식 속에 담긴 욕망의 투영물들이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는 자신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수호자다. 이안 플레밍의 원작 소설이 탄생한 이래 007은 자본주의와 서방세계를 지키는 ‘수호천사’이자 ‘슈퍼 히어로’였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 하게도 자본주의를 그토록 위협해 왔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자본주의 수호천사’의 최대 위기를 몰고 왔다. 본드의 적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007시리즈 18편 ‘007 네버 다이(원제 'Tomorrow never dies'․1997년)’는 매우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예스마담’ 시리즈의 히로인 양자경이 본드걸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가장 좋은 부분이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에피소드의 악당이다. ‘네버 다이’의 악당은 ‘북한’이나 ‘이란’ 같은 서방 세계의 적도, 테러리스트 조직도, 국제 마약밀매단도, 무기밀매단도 아니다.
‘네버 다이’의 악당 ‘엘리엇 카버’는 전 세계 신문, 잡지, 방송, 위성방송 등을 장악하고 있는 어엿한 미디어 그룹의 소유자다. 근데 이 친구 욕심이 과하다. 지구를 자신의 미디어로 장악한다는 꿈을 가진 카버는, 각국 정부가 내는 보도자료 베껴 쓰기에 지쳐버렸는지 스스로 뉴스를 만드는 단계에 이른다. 이른바 의사사건(Pseudo event)을 자신이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또 불순하다. 위성을 이용해 남지나 해역에 있는 영국 군함이 중국 영토를 침입한 것처럼 조작한 뒤 영국 군함과 중국 비행기를 격추시켜 버린다. 이것이 카버 미디어가 내는 신문 ‘Tomorrow’지와 뉴스를 통해 특종으로 보도되고, 전 세계는 곧바로 3차 세계 대전의 위기에 빠져든다. 카버의 음모는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카버 미디어의 위성방송과 계약을 거부한 중국을 굴복시킨 뒤, 전 세계 미디어를 장악함으로써 세상을 자기 뜻대로 주무르는 것이다. 물론 007 시리즈답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하지만 ‘네버 다이’가 개봉 당시 주목 받았던 이유는 엘리엇 카버가 실존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기 때문이다. 바로 언론계의 식인 상어 루퍼트 머독이다. 최근 루퍼트 머독은 전통의 ‘월 스트리트 저널(WSJ)’을 인수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최근 프랑스도 루이비통과 헤네시를 소유한 재벌 아르노가 경제지 ‘레제코’를 인수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단순하게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머독이 ‘더 선’, ‘더 타임즈’ 등을 이용해 편 친 노동당 논조, FOX TV를 통한 미국 정치 개입, 아르노가 ‘라 트리뷴’을 이용해 사르코지 당선에 행사했던 영향력을 떠올려 본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자명해 진다.
한국은 자유로운가? 현재 조, 중, 동의 ‘대통령 만들기’는 결코 외국 미디어 재벌들에 모자라지 않는다. 더구나 한-미 FTA 이후 닥쳐올 방송시장 개방, 방통융합, 대선 후 정치지형의 변화(이명박 후보는 신문-방송 겸영금지 조항을 재검토 한다고 밝혔다) 등 난관은 겹겹이 쌓여있다. 과연 미디어가 점점 부유해지는 것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영화 속에서 ‘언론 사주’ 카버는 자신의 일으킨 의사사건의 신문 헤드라인을 직접 편집한다. 전 세계 지국과 편집회의를 하며 카버는 기자들을 ‘골든 리트리버’라고 부른다. 그는 언론이라는 ‘힘’을 가지고 전 세계를 완전하고 총체적으로 장악하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언론 환경은 과연, 007 영화 속 ‘카버 미디어그룹’보다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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